이 건물은 세종 때 좌의정을 역임한 이원(李原)의 여섯째 아들 영산현감 이중공이 안동 산수의아름다움을 좋아하여 이거하여 그의 셋째 아들 형조좌랑 이명이 건축한 조선 중기의 별당형 정자이다. 목조건물로는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임진왜란을 겪어 온 오래된 건물이다.
대청에 걸려있는 임청각의 현판은 퇴계 선생 친필로 알려져 있다.
丁자형의 누각으로 된 별당건축이다. 정면 2칸에 측면도 2칸인 대청이며 남향으로 세웠다.
그 서쪽에 연접해서 丁자형으로 온돌방을 부설했는데 그 내부는 4개의 방으로 구분되어 있다. 건물의 주위에는 쪽마루를 돌려서 난간을 세웠다.
온돌방의 한부분은 각주를 세워 굴도리를 얹은 간단한 구조로 홑처마로 구성하였다.
그러나 대청은 원주를 사용하고 그 위에 이익공계통의 공포와 그 사이에 화반을 1개씩 배치하였으며 겹처마로 만들었다.
공포는 건물의 외면에서는 쇠서의 형태를 갖추지 않고 간소하게 초공으로 꾸며져 있다. 벽은 회벽을 치고 대청 주위에는 판문을, 온돌방에는 빗살문을 달아 놓았다.
처음에는 대청전체에 단청을 하였던 것 같으나 현재는 내부에서만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대청의 대들보 위에 얹은 대공은 접시받침과 첨차 및 초각반을 갖춘 동자주 형식이며, 종량위에는 상부에 첨차가 가로 낀 제형대공이다.
종량을 길게한 3분변작법을 채택하여 지붕의 합각부분이 큰 면적을 차지하게 되었다.
임청각 서쪽에 위치한 본채는 양지바른 산기슭에 자리잡았는데 총 50칸을 넘는다.
전면 아래서부터 동서 길이 12칸의 행랑채와 그 후면에 다시 같은 길이를 이룬 두채가 병행되는데 제일 뒤 건물의 중앙에 대청을 두었으며 그 전면 좌우에는 앞뒤채를 연결하는 방이 있어서 안마당은 세구역으로 구분되었다.
서단은 다락방으로 남북을 연결하였으며 이들은 곳간으로 사용되고 부엌도 이쪽편에 위치하였다. 지붕은 모두 홑처마이고 맞배지붕들인데 대청은 소슬지붕이다. 방주를 사용한 납도리집이나 안채와 대청은 굴도리집이다. 건축양식상으로는 대청의 가구재로서 포대공이 눈에 띤다. 대청의 규모는 3칸×4칸인데 전면에 퇴가 달렸다.
안동역에서 5분 소요 3.2㎞( 안동역→법흥지하도→보조댐입구 )
교보생명 앞(안동시외버스터미널 옆)에서 3번 시내버스로 10분 가량 소요.